수림문학상

김범정

제8회 수상작
『버드캐칭』 - 김범정

  • 내용
    저자 김범정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20대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8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평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 장편소설을 쓰느라 고생했을 응모자들의 고충과 열망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2020년 수림문학상 당선작 선정 과정은 어느 때보다도 신중했다. 올해는 예년과 비교해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룬 좋은 작품이 많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 때문인지 감염병이나 기후 문제, 환경 재 앙을 배경으로 한 아포칼립스형 재난 소설들이 있었고, 더욱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양극화 현상에 대한 천착과 계급, 젠더 불평 등을 이야기하며 연대의 가능성을 그려 보는 소설들이 있었으며, 우울감을 포함해 정신신경증을 앓는 사람들의 신체적·정신적 병리 현상을 다룬 작품들이 있었다. 또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도 있었다.

    본심에서 수상작을 가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여섯 편이었는데 『광인일기』, 『노다지 사피엔스』, 『바이 사이클 라이더』, 『밤보다 더한 어둠』, 『버드캐칭』, 『서늘한 열대』가 그 후보작 들이었다. 심사자들은 우선 이 작품들을 대상으로 지나치게 서사가 과하거나, 디테일의 승함에 비해 서사가 잘 잡히지 않아 난감한 작품은 제외했다. 또 작품을 쓴 동기가 약해 경험치 이상의 세계를 보여 주지 못하거나, 구성적 요소에서 자의성이 지나쳐 동의하기 어려운 작품도 제외했다. 그 과정을 거쳐 『노다지 사피엔스』와 『버드캐칭』을 놓고 두 작품의 세계를 집중 토론했다. 『노다지 사피엔스』는 우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강남에서 '복권방'을 운영하는 화자와 이 공간에 드나드는 손님들과 지인들을 삽화 형태로 보여 준 작품이었다. 삽화마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무엇보다 취재력이랄까,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의 세부 항목들, 정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다. 그 삽화들을 전체적으로 그럴법한 서사로 꾸려 내는 힘도 만만치 않았다. 단순히 '로또'와 '토토'를 팔고 사는 공간을 넘어서서 부에 대한 열망과 실패를 나누고 공유하는, 변두리 인생들의 무력하지만 절실한 희망의 장소를 핍진하게 보여 준 작품이었다. 가공되지 않은 삽화가 주는 힘과 유머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이야기의 형식이 다소 올드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버드캐칭』은 요즘 보기 드문 순정한 로맨스 플롯의 소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연인의 결별 선언으로 위기에 처한 '도형'을 따라 그가 맞닥뜨리게 되는 변화를 따라간 작품이다. 이 소설의 문장은 단순히 서사를 실어 나르는 도구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기품 있고 우아했으며 서사를 만드느라 쫓기는 대신 소설 안에서 사유할 여백을 만들어 주었다. 다소 감상적이고 반복적인 감정 패턴을 반복해서 서술하는 점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상대를 헐뜯지 않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서사 안에서 오랜만에 평온할 수 있었다. 결별하고 상처받았으나 누구도 잘못되거나 낙오되지 않고 부서진 삶을 추스르고 이어 가는 이 작고 고요한 세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지키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열망과 상실을 보여 주는 문장과 사유가 적절하고 명징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순정하고 상처 내지 않는 고요한 세계에 매료되었고 『버드캐칭』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수림문학상에 작품을 응모해 준 수많은 응모자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대한다. 힘들어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 시간이 지속되고 그 시간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갈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

    서평

    ▲불확실성에 갇힌 이 시대 청춘에게 사랑은 어렵고 복잡하다.
    공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도형은 3주 뒤 정직원 심사를 앞두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있고 돌아가는 회사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도형은 이참에 8년을 사귄 여자 친구 세현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세현은 3년 다닌 대학병원을 그만둔 후 무력감과 불안감에 빠져 결혼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세현은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도형의 곁을 떠나 도형을 패닉에 빠트린다. 세현은 자신의 삶을 마음껏 살고 싶어서 떠날 결심을 했다면서 원하는 게 생기면 그걸 얻기 위해 때론 가진 걸 다 버려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또 세현을 만날 계기를 만들어준 친구 준영을 미워하지 말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긴다.

    키가 크고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를 가진 준영은 도형과 전교 1등부터 100등까지 들어갈 수 있는 야자반에서 함께 공부한 고교 동창이다. 학창 시절 서로 공부에만 열중하던 사이여서 별로 친해질 기회가 없다가 졸업 후 둘이 재수 학원에서 다시 만나고, 세현과 함께 어울리면서 셋이 친해진다. 그러나 도형과 세현이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도형과 준영은 묘한 긴장감 속에 사이가 멀어진다. 소설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 청춘들이 겪는 고독과 삶에 대한 몸부림을 실감나게 그린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방황, 때론 무모한 행동과 정서적 불안 등 현실의 벽에 부딪친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우리 세태의 뒤틀린 모습과 아픔을 곱씹어 보게 한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반전으로 청춘의 일탈을 변론하다!
    도형은 준영이 레지던트 의사로 일하는 병원을 찾아내지만, 준영을 만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세현이 없어진 날 준영도 사표를 내고 사라졌다는 얘기를 그의 연상 연인이자 동료 의사인 지혜로부터 듣는다. 도형은 세현과 준영이 동시에 사라진 사실에 주목한다. 아마도 추억이 있는 곳으로 둘이서 갔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도형은 오래전에 셋이 마지막으로 여행한 제주도를 떠올린다. 지혜는 당시 여행코스와 추억을 그대로 따라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도형은 지혜의 제안에 이끌려 세현과 준영을 찾아 무작정 제주도로 떠난다. 도형은 지혜와 함께 하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둘 다 사랑이 고픈, 사랑이 아픈 청춘들이지만 도형은 길동무인 지혜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는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입장이 서로 다르지만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감이라는 정서가 공통적임을 보여준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구성이나 기법이 치밀하고, 흡인력 있는 스토리가 사랑의 방식마저 기존의 틀과 관념을 거부하는 이 시대 청춘의 초상을 정교하게 짚어낸다. 무엇보다 소설의 소재인 청춘이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인간의 욕망을 결합한 로맨스 전개가 돋보인다. 또 동성애 코드를 곳곳에 활용해 로맨스의 지평을 넓히고 몰입감과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갈등 해결 과정에서 실마리가 되는 점도 신선하다. 김범정 작가는 소설에 나오는 두 종류의 삼각관계와 '무부 석사'로 불리는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 유학생의 존재는 이런 설정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방황, 그 안에서 나를 찾는 이야기
    소설에서 청춘시절의 사랑은 취업과 함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된 축으로 묘사된다. 소설은 학점으로, 취업으로, 연애로, 그리고 여러 가지 인간관계로 고뇌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실제로 세현과의 관계만큼은 지켜 내리라 마음먹는 도형과 달리 삶이 팍팍해 연애마저 부담스러워 하는 세현의 모습을 통해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로맨스 푸어'를 자청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씁쓸하면서도 진솔하게 담아낸다. 소설은 도형이 세현을 찾는 과정에서 한 때 가까웠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과 자신이 몰랐던 진실을 마주하면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또 각개전투 하듯 현실과 싸우던 등장인물들이 서로 만나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사람의 처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보여준다. 김범정 작가는 소설에 나오는 또래 인물들의 좌절과 성장통을 풋풋한 청춘의 단면에 절묘하게 녹여내며 같은 시대를 사는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낭만적인 청춘 로맨스를 선보인다. 특히 소설은 '요새 젊은 애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과거 90년대 X세대를 필두로, Y세대,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며 이제는 중년에 들어선 지금의 기성세대에게도 청춘시절 영혼의 발랄함과 그 시대의 청량감을 추억하게 해준다.